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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선배 말 믿어요. 선배가 어떤 거짓말을 해도 저는 다 믿어요. 주마등을 겪기라도 하듯 며칠 전의 일이 내 머릿속을 흝고 지나갔다. 몇 번이고 생각하고 내뱉었던 말들. 혹은 선배를 보자마자 감정적으로 휘몰아쳤던 말들. 그것을 상기하기가 무섭게 그때의 모든 것들이 생경하게 다시 느껴졌다.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던 그때의 공기도, 수십번의 달싹임이 있었던 내 입술도, 내 말에 흔들리던 선배의 눈동자도,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의 감촉도, 그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온 감각을 타고 느껴져서, 나는 그날을 잊을래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기억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있을 리 없는 기억인지 난 몰라요. 하지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거, 제 불안의 원인이 선배에게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을 지킬 거예요. 약속을 하듯이, 내 눈물을 꾹꾹 누르며 했던 말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만약 선배가 하는 일이 범죄임에도 그가 몰라주기를 바란다면 나는 눈 감을 자신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선배가 사형대에 오르는 것 만큼은 모른 척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래서였을 뿐이다. 결과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내가 선배를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그저 내 마음이 그걸 원했기 때문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단장실 앞에 도착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당겼다. 익숙하면서도, 어쩌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인영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느릿하니 입술을 떨어트렸다.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은 굳혔니?”

 

 “란 벨르네피아의 사형. 저는 막아야 겠어요. 만약 내일 있을 신성의회에서 란 벨르네피아의 사형이 확정된다면, 저는 단장님을 죽여서라도 그 사형 막을 거예요.”

 

  만약 이 결정으로 내 목숨이 위협을 받는대로 나는 무를 생각이 없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선배를 잃었을 때의 죄책감과 공허감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일말의 번복따위는 없을 것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산다는 그런 결말은 없다. 모두의 말이, 상황이 두 갈래 길만을 가르키고 있었다.

란 벨르네피아가 죽거나, 체르타 여하단장이 죽거나. 그 화살을 어느 과녁에 맞출지는, 어쩌면 나보다는 테쎄라가 우위에 서 있어서. 나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활을 뺏어야만 했다. 그게 우연히 마주치는 여하단장을 말로 설득하는 것인지, 혹은 무력으로 죽여야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란 벨르네피아의, 선배의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의- 목숨을 살릴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다른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고 다녀서 방법을 찾을 새를 몰랐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도, 내 이성을 이기고 내 마음은 선배를 지키라고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정녕 선배를 내칠 수 없는 것까지도.

  어쩐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하순을 깨물었다. 만약, 내가 단장님을 멸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과연 단장님을 멸할 수 있을까. 겁쟁이마냥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도망쳐 버리지는 않을까. 괜히 헛구역질을 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현실을 마주보기가 무서워서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아는 거라고는 하나 없는, 그저 철 없는 어린 아이로 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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