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아직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는데, 제가 멸할 바에는 차라리 단장님이 하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란다. 아니. 오직 히아센,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체르타의 말에 히아센이 꿀꺽, 침을 삼켰다. 궁금했던 게 사라지기라도 한듯이 올렸던 까치발을 다시 내리고는 영롱하게 빛이 나는 눈동자로 체르타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체르타는 히아센을 바라보며 제 고개를 옅게 까닥이는 듯싶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던 곳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게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거예요?”
“남들이 볼 때는 별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혹은 너에게도 별 게 될 수도 있겠구나.”
뒤적거리던 손을 멈춘 체르타가 히아센에게 손을 내밀더니 이내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흰색 꽃 위에 자줏빛 물감이 한 두 방울 떨어진 듯마냥 생긴 꽃이었다. 체르타가 건네준 꽃을 받은 히아센이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웬 꽃인가 싶었다.
“제가 웬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죠? 갑자기 꽃을 멸해달라고요? 이 꽃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꽃이라도 돼요?”
“이 꽃은 많은 이들이 나에게 준 꽃이란다. 꽃말이 인기라며, 나에게 어울린다고 하더구나.”
“엑. 자랑이라도 하시는 거예요?”
몸을 한껏 움츠리며 장난스레 웃던 히아센이 체르타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이나 체르타의 표정이, 그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히아센이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리며 체르타의 눈치를 살폈다. 체르타가 희미한 고소를 자아냈다.
“그냥, 평범한 꽃이야. 남들은 밟을 수도, 찢을 수도, 혹은 외면할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꽃. 그러나 이 꽃이 나에게는 많은 의미로 함축되어 나는 이것을 멸하고 싶음에도 할 수가 없구나. 나는 겁쟁이이며, 아무리 용기를 낸다고 하더래도 창조주가 허락해 주시지 않거든. 참 가혹하게도.”
“그러면 제가 이 꽃을 멸하는 게 창조주의 권한에 침범되는 게 아니에요?”
“걱정마렴. 이 꽃이 히아센 너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다른 존재가 네 감정을 좀먹는 것까지는 보호해주지 못 하겠지만. 체르타가 뒷말을 삼켰다. 그저 덤덤하니 히아센을 바라볼 뿐이렷다.
그런 체르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히아센은 그가 건넨 꽃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다. 예쁜데 멸해야 한다니 조금 아쉽다. 어느새 실로폰채를 내려논 히아센이 양손으로 꽃줄기를 꼬옥 붙잡았다. 누구한테도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경계하는 것 같았다.
“제가 할게요, 멸. 물론 성공한 뒤에는 존재 여부조차 잊어버려서 자랑은 못하겠지만, 그때는 단장님께서 눈치채 주셔야 해요! 그리고 제가 잘 해내게 된다면 다음 번에도 저를 믿고 다른 것들도 부탁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단장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릴테니까요. 히아센이 체르타를 바라보며 제 눈꼬리를 초승달마냥 휘었다. 어여쁜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