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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었다. 서늘하면서도 습기를 담은 바람이었다.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붉은색이 흔들렸다. 란은 웃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추락했다.

※※※※※

 “선배, 손에 든 그 꽃 뭐예요?”

 

  펭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것인지 한껏 이름 모를 꽃을 손에서 만지작거렸다. 히아센은 침대 옆에 앉아있는 펭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은은한 꽃향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어쩐지 말려서 꽂아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평소에는 인테리어는커녕, 자신을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어쩐지 이 꽃에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장식하고 싶었다. 시드는 모습을 가능하면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 없음은 알고 있다. 이 꽃은 이대로 놔둔다면 언젠가 시들어 버리고 말겠지. 그럼에도 말리면 어떻게든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뇌를 굴리느라 더듬이가 꽃 모양이 되어버린 것도 모른 채 있다가 어디선가 진한 시선이 느껴지자 그제야 펭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아니, 그러니까 동물 펭귄 말고. 히아센은 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색하게 물었다.

 “아, 선배… 불러도 답이 없으시길래. 이 꽃 이름 뭐예요?”
 

 “붉은 국화래.”

붉은 국화? 하얀 국화나 노란 국화는 본 적이 있어도 붉은 국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히아센에게 붉은색의 국화는 새로운 것이었다. 신기함에 요리조리 돌려보고(펭귄의 손을 돌려서), 냄새도 맡아보고 했지만 일반 국화와 다른 점은 색깔, 그리고 친근함 뿐이었다. 이상하다, 내 주위에 이런 꽃이 있던가. 희한하게 막 마음이 이상하네. 히아센은 손을 뻗어 꽃봉오리를 한 번 건드려 보았다. 싱싱함을 방증하는 꽃잎 특유의 서늘함이 손가락을 간질였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 펭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꽃말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래.”
 

 “와, 와아… 낭만적이네요. 산 거예요?”

 

  펭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옛날에 아내랑 산 꽃이야. 갑자기 사러 나가서 이거 사줬어. 그렇게 말을 하는 펭귄은 평소의 모습답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도 허당끼가 있긴 했지만, 연약하다는 인식과 강하다는 인식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머리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 다쳐서 오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본질인 건지, 어쩐지 옆에서 바라보는 그의 현재 모습은 굉장히 깨질 것 같은 유리 인형과도 비슷해 보였다. 툭 하고 건드리면 깨질 것만 같은 모습. 란은 그때 등에 전해져오는 온기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당사자인 히아센도 본인이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펭귄을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따듯한 미소였다. 세니카를 닮은 미소였다. 이상해, 세니카. 나는 너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어. 미워할 수가 없어서 널 이렇게까지 찾고 있는데, 자꾸 네가 웃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
펭귄은 조금을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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